사찰의 명칭
이 장(章)에서는 사찰과 불교의례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한국의 명산대천(名山大川)에 들어가 보면 어느 곳을 막론하고 절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이 사찰의 이름을 순수한 우리말로 볼 때 그대로 <절>입니다.
그런데 왜 절이라고 하느냐 하는 뜻에 있어서는 의견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신라시대에 인도의 묵호자(默胡子)스님이 신라의 선산 땅에 오셔서 모례(毛禮)라는 집에서 머무르셨기 때문에 모례라고 하는 발음을 신라말로 할 때 떨례라고 했을 것이며, 이 털례가 천례로, 천례가 절례로 바뀌어서 나중에는
례자가 생략되어 <절>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확실히 그런 것인지 여기에 대해서는 일정한 설이 없습니다.
어쨌던 절이라고 합니다
또 제가 어렸을 때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인데 절은 절에 가서 절(拜)을 자꾸 한다고 절이라고 하는 상식적인 말씀도 들었습니다.
지금도 그 말씀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참 좋은 말씀입니다.
절은 우리 나라 좋은 명산 대천의 곳곳에 있습니다.
이 절을 법어로 본다면 승가람마(僧伽藍摩)라고 합니다.
또 승가람(僧伽藍)이라 하기도 하고 간략히 가람(伽藍)이라 칭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뜻은 무리 중(衆)자, 동산 원(園) 중원(衆園)이란 뜻입니다.
많은 대중이 모여 사는 곳이며 모든 집회를 하고 여러 행사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중원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어휘와 어원을 가진 사찰은 인도로 본다면 죽림정사(竹林精舍)가 최초의 불교사원이었습니다.
이 죽림정사가 부처님께서 성불하신 후에 최초로 건립된 사찰입니다.
그 다음에 는 유명한 기원정사(祇園精舍)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중국으로 본다면 가장 최초로 세워진 사찰로는 백마사(白馬寺)라는 절이 있습니다.
왜 백마사라고 했느냐 하면 인도에서 흰 말에다가 경을 싣고 왔고 또 부처님 상을 싣고 왔는데 그 맥마가 하도 먼 여정에 시달리고 지쳤기 때문에 중국에 와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백마를 기념하는 뜻에서 절을 지었기 때문에 이름을 백마사(白馬寺)라 붙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지어진 사찰은 고구려 시대의 성문사(省門寺)와 이불란사(伊弗蘭寺)라고 하는 절이 있습니다.
이곳이 우리 나라에서 최초에 건립된 사찰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찰이 바로 중국이나 우리 나라에서는 도장(道場)이라는 말로 불리어질 때가 있었습니다.
이 도량에는 전체의 부처님이 계신 곳이며 불법의 도를 선양하고 구현하는 곳이라 해서 도량이라고 고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역시 사찰이나 사원으로 칭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찰은 이상과 같은 명칭과 유래가 있었습니다.
이 중원에는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곳은 몸과 마음이 청정한 사람들이 모여서 있는 곳이라 하여 청정원(淸淨院)이라 하며 또 여기에는 온갖 세속적인 갈등과 번민을 초월한 집이라 해서 출세사(出世舍)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깨끗한 집이라 해서 정미로울 정(精)자. 집사(舍)자를 써서 정사(精舍)라고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절에는 모든 고뇌가 멀리 떠난곳이라 해서 원리처(遠離處)라고도 합니다.
또 이곳은 그야말로 진리를 가까이하는 곳이 고 정법을 가까이한다는 뜻에서 친근처(親近處)라 하기도 합니다.
한국의 사찰
우리 나라에서는 옛부터 사찰을 많이 건립했습니다.
예를 들면 신라시대에는 화엄십찰(華嚴十刹)이 있고 선문구산(禪門九山)이 있었습니다.
화엄종을 중심으로 해서 부석사라든지 기타의 많은 절들이 있었는데 이것은 다 화엄경 정신과 화엄경 교의를 선양하고 홍포하고 실천하는 대표적인 사찰로서 화엄십찰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선문구산이 있는데 선문구산이라고 하는 것은 선종에서 선을 닦아가는 선사님들이 하나하나 산문을 개설해서 생겼습니다.
그런가 하면 고려시대에는 천태종 사찰로서 천태육산(天台六産)이 있었습니다.
천태종에 있어서 여섯 군데에 대표적인 사철이 있는데 이것이 천태육산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서울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찰이 많이 지어 졌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 현상으로 볼 때 불교의 역사적 과정과 그 사찰의 건립은 불교가 흥할 때는 사찰이 많이 건립되고 불교가 약간 쇄퇴할때는 사찰의 규모나 그 창건도 그렇게 활발하지 못한 것을 알 수 가 있습니다.
현재에 한국의 사찰 중에 신앙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오대적멸보긍(五大寂滅寶宮)이라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신라시대에 자장법사 스님께서 중국에 가셔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가지고 오셨는데 그 사리를, 남방에는 양산 통도사에
모시고, 북방에는 오대산 이라든지 설악산, 태백산, 사자산, 이런 등등에 모셨기 때문에 그곳을 전부 통칭해서 오대적멸보궁이라 합니다.
이상의 보궁은 한국 불자들의 성지이고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직접 모신 곳으로, 도량으로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찰로서 아주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찰의 배경과 역사적 실증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사원에 있어서 근본 정신이라 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이것을 들 수가 있습니다.
최초의 인도 사원이 죽림정사이고 그 다음 사원이 기원정사입니다.
그러나
죽림정사와 기원정사가 건립되기 이전의 근본 정신이 있을 것입니다.
왜 사원이 건립되어야만 헸느냐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부처님께서 탄생하셔서부터 성불하시고, 교화하시고, 마지막에 열반하신 부처님의 사대 성지가 그대로 사찰의 원시적 원형입니다.
예를 들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부다가야 보리수 나무 아래서 성불하셨는데 성불하신 그곳이 바로 절의 원형입니다.
그 다음에는 녹야원에서 설법하셨는데 바로 설법한 그곳이 사찰의 기본이고 또 구시라성에서는 열반에 드시면서 우주의 근본 정법의 모습을 보이시고 진리의 실상을 그대로 보이셨는데 그곳이 바로 사찰의 기원에 해당하는 장소입니다.
이러한
성불하시는 부처님,
설법하시는 부처님,
열반의 모습을 보이시는 부처님,
그리고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자취 등을 보이신 곳은 다 사찰의 기본적인 고향이 된다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사찰의 근본정신을 찾을 때 부처님의 사대성지를 빼놓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부처님이 탄생하신 곳이 바로 사찰의 기본이요, 성불하신 곳, 설법하신 곳, 열반하신 바로 그 땅이 사찰의 고향이 되고 사찰의 기원이 된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찰을 생각할 때 향상 부처님이 설법하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사찰에서는 항상 불법의 정법이 강설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찰에서는 항상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불하신 모습을 생각해야 합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서 성불을 하셨는데 지금은 보리수 아래 가서 수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수도하기에 편리하도록 사찰을 지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다가야의 보리수 그늘이 오늘날 사찰로 옮겨졌다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불하고, 해탈하고 마귀를 항복 받고 도를 통하는 근본 정신으로 건립된 것이 바로 절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항상 부처님이 새롭게 탄생하는 정신을 몸소 체험하는 뜻에서 늘 사찰에는 부처님이 탄생하시는 룸비니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사찰에서는 부처님이 영원한 진리를 보이시고 열반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는 곳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사찰의 근본 정신을 찾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찰은 바로 부처님께서 중요한 교화 활동을 하셨던 사대성지 자체가 사찰의 기원이다. 이렇게 우리는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찰의 구성
다음은 사찰의 일반적인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나 하는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찰을 크게 나누어 보면 당(堂), 탑(塔),요사(寮舍)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찰에 가 보면 대웅전(大雄殿), 관음전(觀音殿), 비로전(毘盧殿) 등의 법당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라시대에는 대웅전을 금당(金堂)이라고 썼습니다.
이 당(堂)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을 모신 법당(法堂), 즉 부처님을 모신 집을 당이라 합니다.
오늘날에 와서는 전(殿)자를 써서 전이라 합니다.
이리하여
사찰은 첫째의 기능이 부처님을 모신 법당(法堂)이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탑(塔)이 있습니다.
당이 있으면 탑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불교신앙의 원류를 고찰해 볼 때 당보다도 탑이 먼저 있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상이 조성된 후에 지어졌다고 보겠고 탑은 불상이 나타나기 전 부터 불교신앙의 기본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탑은 부처님 이전부터 인도에 있었던 것입니다만 불교의 탑으로서 그 기원을 찾는다면 부처님 생전에 불교의 탑이 있었습니다.
그 예를 보면 한 번은 부처님을 독실히 신봉하는 한 제자가 부처님이 계신곳에서 다른곳으로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그 제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가 세존을 떠나서 멀리 있는 동안 항상 부처님을 마음 속에 모실 수 있는 어떤 표증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때에 부처님께서 머리카락을 잘라주시면서 그것을 탑과 같이 만들어진 곳에다가 넣고 모발이 둘어 있는 탑같은 형태에 항상 예불을 드리고 가까이 하면 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사실상으로 불교의 탑은 원시적인 기원이 되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사찰에서 탑을 모시는 경우를 보면 대웅전 앞에 탑을 하나 모시는 경우가 있고, 둘을 모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을 일탑식(一塔式)이라고 하고 쌍탑식(雙塔式)이라고 합니다.
보통 산지(山地)의 사찰에는 탑을 하나 모시고 평지(平地)의 사찰에는 둘을 모십니다.
예를 들면 불국사같은 경우에는 쌍탑식 평지 가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산간의 사찰에 가보면 보통 탑이 하나가 모셔져 있습니다.
이것을 일탑식 산간가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탑중에는 대웅전 뒤에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는 탑이 있으면서 법당에다가 부처님을 안모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보궁이라고 합니다.
이때에는 당탑의 구분이 아니고 바로 부처님 사리를 모신 그 탑이 기본이 되고 본당(本堂)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요사(寮舍)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요사란 스님들이 수도하는 곳이며 거기서 스님들이 일도 하고 공부도 하는 집들이 그대로 요사입니다.
여기에는 후원(後院)이라고 하는 곳도 있고, 외부 사람들을 맞아들이기 위한 객실도 있고, 기타 사찰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보관하는 곳도 있어서 여러가지 의 기능을 담당하는 장소가 바로 요사입니다.
이리하여 사찰의 기본은 법당, 탑, 요사, 이렇게 구분할 수가 있습니다.
사찰의 건물배치 구조를 보면, 첫째 정문에 일주문(一柱門)이라고 하는 건물이 있습니다.
한 줄로 된 기둥으로 이루어진 건물이 있는데 그 건물은 사찰의 초입문입니다.
그래서 양쪽에 기동이 하나씩 서 있고 복판으로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왜 이렇게 한 기둥을 세워서 문을 만드느냐 하면 불교에서는 가장 높은 법이 일승법(一乘法)이라고 해서 온갖 진리가 하나로 돌아간다고 봅니다.
그리하여 절대적인 하나의 진리, 변할 수 없는 하나의 진리를 문으로 나타낸 곳이 바로 일주문인 것입니다.
이러한 일주문을 지나다 보면 천왕문(天王門)이라고 하는 문이 있습니다.
양쪽에 네 분의 사천왕 신장(四天王神將)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 사천왕 신장은 굉장히 보기에 무섭고 엄숙하고 아주 험하게 생긴 인상을 풍깁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큰 절에 가보면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이 사천왕상이었습니다.
눈이 우락부락
하게 생기고, 근육이 발달하고, 험악하게 생겼습니다.
왜 이렇게 험악하게 나타냈느냐 하면 이것은 여러 가지로 의미하는 바가 있습니다.
사천왕은 부처님의 불법을 잘 받드는 수호신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 그런 강력한 힘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사천왕은 강하고, 무섭고, 엄한 모습을 보이시기 위해서 그와 같은 현상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선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준다는 선상악벌(善賞惡罰)을 나타내는 것이 사천왕상입니다.
그 다음에 사천왕 문을 지나면 불이문(不二門)이라고 하는 문이 나옵니다.
여기서부터는 완전히 불법의 세계이며 부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고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둘이 아니고 현재와 미래가 두리 아니어서 완전히 하나의 불법세계로 들어간다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 불이문(不二門)을 세움니다.
이것은 바로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으로서 어느 절이든지 큰 절이라고 하면 아주 기본적인 양식입니다.
이러한 불이문을 지나서 들어가면 바로 일직선으로 보이는 법당이 그 절에서 제일 중심이 되는 법당입니다.
이와 같이 본법당 외에 기타 다른 법당이 안치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본법당을 중심으로 탑(塔)이 안치됩니다.
법당과 탑에 이어서 요사(寮舍)가 배치되어 하나의 절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요사에는 보통 현판들을 붙이는데 수선당(修禪堂), 해행당(解行堂), 심검당(尋劒堂), 선불장(選佛場) 등의 현판들을 붙입니다.
이러한 현판들은 스님들 이 여기서 참선을 하고 정상적인 이해와 실천을 갈 해나가는 수도장이란 것을 뜻합니다.
심검당이라고 하는 것은 고려시대 이후로 우리나라의 아주 독특한 현판 중의 하나입니다.
칼은 지혜의 칼을 뜻합니다.
칼을 찾는 것이 중요한 공부라 하여 심검당(尋劒堂) 이라고 합니다.
선불장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선불장도 역시 고려시대 말엽부터 우리 나라에서 많이 썼던 말입니다.
부처님을 선출하고 부처님을 다시 태어나도록 하는 것이 사찰 수도장이기 때문에 선불장(選佛場)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찰에는 법당(法堂), 문루(門樓), 탑(塔), 요사(寮舍) 등이 하나의 건물로 이루어져서 사찰형대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법구
다음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은 법구(法具)에 대해서입니다.
법구에 있어서는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서 종(鐘)을 들 수가 있습니다.
절에는 큰 종, 작은 종, 많은 종이 있습니다.
이 종은 중국에서 특히 발달한 것이며 인도의 건추(楗鎚), 즉 나무 편목을 마주치면 거기서부터 소리가 나는 건추에서 유
래가 되어서 중국에서는 큰 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시간을 알리고 여러가지 신호의 역활을 하였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신라시대 때부터 많은 종을 조성했습니다.
특히 경주에서 만들어 진 성덕대왕 신종이라 하는 속칭 에밀레종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유명합니다.
종은 지옥의 중생들을 모두 이고득락(離苦得樂)시키는 데 쓰여지고 불법의 장엄한 진리를 깨우치는 용도로 쓰여지는 중요한 법구입니다.
그 다음에는 목어(木漁)를 들 수가 있습니다.
목어란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어서 양쪽으로 두들겨서 소리가 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목어도 역시 시간을 알리는 법구입니다.
이 목어의 모양을 간단히 줄여서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목탁입니다.
목탁은 물고 기의 모양으로서 목탁의 손잡이는 물고기의 꼬리가 양쪽으로 붙은 형태입니다.
목탁에 있는 두 구멍은 물고기의 아가미를 의미합니다.
왜 절에서 이와 같이 물고기의 모양으로 목어와 목탁을 만들며 풍경을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어서 울리느냐 하면 물고기는 잠을 잘 적에도 눈을 뜨고 잠을 자기 때문에 절에서 수도하는 분들은 잠을 자지 않는 물고기 같이 항상 부지런히 수도에 임하라는 뜻에서 물고기의 모양을 많이 달아 놓습니다.
그리고 하나 상식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것은 옛날의 자물쇠를 보면 바로 물고기 형태의 자물쇠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왜 그렇게 했느냐 하면 자물쇠라고 하는 것은 본디 도둑을 지키는 사명을 띄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도둑을 지킬 때는 낮에나 밤에 나 잠을 자지 말고 항상 지켜야 한다는 뜻에서 눈뜨고 잠자는 물고기를 잠 안자는 것으로 비유를 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큰 북(弘鼓)이 있습니다.
이 북도 울려서 시간을 알리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운판(雲板)이라고 해서 구름모양의 쇠가 있습니다.
이런 등등을 불교에서는 사물(四物)이라 합니다.
이런 것을 모두 치는 것은 일체 중생에게 다 불법의 법음을 깨우치고 이고득락과 열반해탈을 성취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외에 예불을 할 때 소리를 내서 절할 수 있도록 하는 경쇠(磬)라든지 요발(鐃跋 =바라)이라든지 흔히 많이 보는 죽비(竹毘 = 나무를 양쪽으로 갈라서 그것을 쳐서 소리를 내게 하는 것)와 조그만 소리를 내는 요령도 있습니다.
흔히 예식을 할 때는 목탁과 요령이 그 법구로서 주를 이룹니다.
그러나 불교의 법구로서는 이런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징도 칠 수가 있습니다.
부는 악기, 관악기라든지 현악기, 타악기등 모든 관현악의 악기를 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흔히 볼 수 있는 법구로서는 염주(念珠)도 들 수가 있습니다. 염주는 염불하는데 하나의 도구가 되기 때문에 염주입니다.
염주는 108개로도 만든 것이 있고,
천 개로도 만들어서 많은 형태의 염주를 만듭니다.
염주는 형태에 관계없이 모두 염불을 하는데 필요한 법구입니다.
이 외에도 향로(香爐)를 설치한다든지 촛대를 설치하고, 다기(茶器)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법당 앞에는 옛날부터 석등(石燈)을 만들어서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일반 장식품으로 절에 가면 연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연꽃은 부처님께서 탄생하시는 것을 상징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보리수 나무를 심어서 부처님이 성불하신 것을 가까이 느끼고자 하는 노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둥그런 법륜(法輪)의 표시를 안치해놓고 법회도 하고 합니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의미를 되새기는 것입니다.
이어서 탑은 열반을 실증하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불교의 장식품들은 연꽃, 보리수, 법륜, 탑 등을 망라해서 모두가 성서러운 것입니다.
부처님 본래의 의미를 되새기는데 매우 소중하게 쓰여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찰에는 건물, 법구, 부속 설치물, 장식물, 장식적인 문양등 이런 것들이 모두 조화가 되어서 하나의 사찰이 성립이 됩니다.
사찰의 상징성
그러면 이와같은 사찰, 이러한 사원은 결국 전체적으로 무었을 의미하는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입체적인 만다라(曼茶羅)를 뜻하는 것입니다.
요사가 있고, 탑이 있고, 등이 있고, 종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다 어울려서 입체적으로 하나의 만다라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 사찰입니다.
사찰의 토 하나의 의미는 사찰이 그대로 극락세계를 표현한 장소입니다.
그리하여 사찰은 입체적인 만다라요, 극락세계의 상징인 것입니다.
사찰의 현대적 기능
이와같이 사찰이 꾸며지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옛날에 다양하게 많이 지었던 큰 절의 모습과 같이 그렇게 한다고 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때문에 현대의 입장에서 사찰의 규모를 정해야 할 것입니다.
사찰은 어떠한 일을 할 것인가를 감안하여 지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불교의 기본정신과 현대사회, 현대문화의 특성에 맞도록 바람직한 사찰이 세워져야 할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문화를 수용할 수 있는 사찰은 현대적인 입장에서 불교신앙에 알맞는 봉불전(奉佛殿)과 설법전(說法殿)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수선당(修禪堂), 염불당(念佛堂), 교육원, 예식원, 문화원 등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현대사회, 현대기능에 적합한 사원을 능률적으로 건설하면 불교문화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원의 건립을 통해서 불교의 신앙면(信仰面), 교화면(敎化面)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사찰에 관하여 전반적으로 살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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