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불교의 신앙 체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불교는 복잡하고 세밀한 신앙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렇게 됐느냐 하면, 불교의 대승교리 특수성에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화엄경>에서는 중심이 되는 부처님이 비로자나불이십니다.
<화엄경>의 주불(主佛)은 비로자나불이십니다.
그리고 <법화경>에서 중심이 되는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이십니다.
<약사경>에서는 약사여래 부처님이 주불이시고, <아미타경>에서는 아미타 부처님이 주불이십니다.
이와 같이 불교에는 많은 부처님이 계십니다.
왜 그렇게 되느냐 하는 것이, 불교의 신앙 체계에 상당한 특수성이 있고 여기에 깊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부처님은,
영원한 생명으로서 부처님,
영원한 자비로서의 부처님,
영원한 능력으로서의 부처님이십니다.
이러한 부처님을 실증하게 되었고, 이러한 부처님을 신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대정(大定)으로 나타나시고, 여기에 관세음보살을 비롯해서 많은 보살님들은 대비(大悲)로 나타나시고, 호법선신들, 팔부신장(八部神將)님들은 대지(大智)로 나타나십니다.
이리하여 부처님의 세계는 대정(大定) 대비(大悲) 대지(大智)이십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주로 표현하시는 것은 가부좌(跏趺座)의 모습이 많이 있습니다.
턱 하니 자리를 편안하게 앉으시고 아주 안정된 태도로 미소를 보이시는데, 이것은 바로 우주의 진리와 부처님이 하나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가부좌가 대정으로서 표시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 관세음보살을 위시해서 많은 보살님들께서는 감로수병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감로수병은 대자대비(大慈大悲)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호법신장들은 금강저(金剛杵)라고 하는 방망이를 들고 계신 예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무한한 능력, 강력한 호법의 의지, 이런 것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불교는 많은 부처님과 보살님, 신장님으로 불교의 신앙 체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렇게 많은 부처님과 보살님 중에 어떤 분이 중심이고 어떠한 분이 중심 되는 부처님을 따라서 존재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을 본존불 신앙(本尊佛神仰)과 분신불신앙(分身佛信仰)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본존불 신앙이라고 함은, 많은 부처님이 계시지만 그 가운데에 아주 근본에 해당하는 존귀한 부처님은 어떤 부처님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경전에서 분명히 밝혀 놓은 바가 있습니다만, 특히 <법화경>에서 본존불 신앙을 강력히 권장하고 있습니다.
<법화경>의 주불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입장을 아주 선명하게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법화경>의 여래수량품이나 견보탑품에 보면 부처님의 입장에 있어서 본존불 신앙을 아주 잘 나타내 주고 있는 구절이 여러 곳에서 보이고 있습니다.
<법화경>에 의하면, 세상에는 많은 부처님이 계십니다만 천 부처님, 만 부처님이 계신 가운데 석가모니 부처님이 가장 근본이 되는 부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에 의해서 아미타불님도 말씀이 되었고 약사여래 부처님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많은 부처님의 세계가 석가모니 부처님을 통해서 알려지게 되었기 때문에 일체 부처님은 다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하시게 되었다고 설명을 하고, 많은 부처님 가운데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가장 근본에 해당하는 본존불이라고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천 부처님, 만 부처님이 계시지만, 근본부처님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비로자나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영원한 생명 자체의 표현이 바로 비로자나불이시고, 그 외에 극락세계에 가서 설법을 하시고 교화를 하시는 부처님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 자신이 극락세계의 중생들을 교화하실 때는 아미타불로 나타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약사여래 부처님이 계시는 데 동방만월(東方滿月) 세계에 가서 교화(敎化)를 하실 때는 약사여래불로 나타나시며 그 외에 천 세계, 만 세계, 말하자면 <화엄경>에 나타나는 화장찰해(華藏刹海)의 세계에 부처님의 본존께서 분신(分身)해서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분신 불 신앙입니다.
본존불은 근본에 있어서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 뿐인데, 극락세계에는 아미타불로 분신을 하시고 기타 세계마다 많은 부처님으로 분신해서 나타나시는 분이 석가모니 본존불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석가모니 본존불 신앙입니다.
<법화경> 여래수량품에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교화 시키기 위해서 혹은 다른 사람의 몸을 보이시고 혹은 자신의 몸을 보이신다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 하면, 부처님의 일념은 자비로서 중생을 구제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생구제에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면 어떠한 방법도 쓰고 계십니다.
그런 까닭에 사실은 많은 부처님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본신이면서도 석가모니 부처님이 아닌 것처럼 나투어진 몸으로 나타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불을 할 때든지 이런 경우에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은 사바세계의 교주(敎主)이시고 사생(四生)의 자부(慈夫)이시라고 예불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를 고통이 많고 또 여러 가지가 섞여서 선(善)과 악(惡)이 함께 공존(共存)한다 하는 뜻으로 사바세계(娑婆世界)라고 합니다.
사바세계의 근본교주로서 나타나신 분은 석가모니 부처님이고, 또 극락세계(極樂世界)의 교주로 나타나신 분은 아미타불이시고, 동방만월세계(東方滿月世界)의 교주로 나타나신 분은 약사여래 부처님인데 사실은 모두 하나의 석가모니 부처님이지만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자비의 방편과 친절로써 여러 형태의 부처님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것이 본존불 신앙인 동시에 분신 불 신앙입니다.
이와 같은 신앙의 의미로 여러 가지 불교의 신앙체계가 형성이 되고 있습니다.
이에 근본적인 내용은, 천만 부처님이 계시나 중심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이고 그 외에 많은 부처님은 모두 석가모니 부처님의 본존에서 분신으로 나타나시고 변할 화(化) 자, 몸 신(身) 자 화신(化身)으로 나타나신 부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하나의 부처님이 많은 부처님으로 나타나시고, 많은 부처님이 나타나셨지만 근본에 있어서는 하나입니다.
이렇게 부처님의 세계는 하나 가운데 많은 분이 계시고 많은 분이 계시지만 하나의 부처님으로 계신다 하는 것이 바로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세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일반적인 불교행사를 통해서 한 가지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실제로 우리가 법당(法堂)에서나 기타 불교의 많은 환경을 통해서 부처님의 이름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약사여래불, 비로자나불 등 많은 부처님의 이름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해가지고 부처님 오신 날의 행사에 있어서는 석가모니 부처님 탄생하신 날 [사월 초파일] 하루 밖에는 하지 않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아미타불이 계시면 아미타불 오신 날도 행사를 해야 할 것이고, 약사여래불이 오신 날도 행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는 부처님은 많이 계시지만 부처님 오신 날 경축 행사는 하루 밖에는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바로 이 사바세계의 본존불로서의 교주는 석가모니 부처님이요, 다른 부처님은 모두 석가모니불로부터 분신하신 부처님으로, 중생교화를 하시는 분이라고 하는 신앙체계가 확립된 내용입니다.
이러한 불교 신앙적 체계에 의해서 갖가지 불교의 신앙이 확립되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신앙의 대표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관음신앙[觀音信仰), 약사신앙(藥師信仰), 아미타불 신앙, 이러한 신앙이 대표를 이루고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본존불 신앙은 그대로 본존불이니까 석가모니 부처님을 떠나서는 관세음보살이나 약사여래 부처님이나 아미타불 부처님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우리의 본사(本師)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을 근본으로 해서 여기에 부분적 사명(使命)과 부분적 서원(誓願)을 띠고 나타나는 부처님이 바로 관세음보살님, 약사여래 부처님, 아미타불이십니다.
이러한 신앙 체계에서 우리 불자들이 대표적으로 신망하는 대상은 관음신앙, 아미타불 신앙이며 그 중간에 약사여래불 신앙도 큰 의미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번 시간에는 관세음 신앙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관음 신앙
관세음보살 신앙은 굉장히 신앙의 범위가 넓습니다.
관세음보살 신앙은 우리나라에 상당한 역사적 배경도 있고 신앙의 계층이 아주 다양하고 저변이 아주 두텁게 이루어졌습니다.
관세음보살 신앙은 우리나라의 경우에 신라시대 때부터 그 연원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신라시대에 선덕여왕 당시 자장법사(慈藏法師)라고 하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자장법사를 탄생하기 위해서 그 부모님들이 천 분의 관세음보살을 조성해서 기도를 정성껏 올린 뒤에 바로 자장법사께서 탄생하셨다고 하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비롯해서 당나라에 가서 <화엄경> 공부를 하고 돌아오신 의상스님께서도 낙산사(洛山寺)를 창건하시고 관음 도량을 설치해서 관음 신앙을 돈독히 하신 바 있습니다.
백화도량 발원문(白花道場發願文)은 관세음보살님에 대한 발원문이며, 자신의 신앙적 서원인데 아주 중요한 기록입니다.
이 밖에 계속해서 삼국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관세음보살 신앙을 우리 민족이 독실히 해 온 것을 여러 곳을 통해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에 대해서는 보통 6관음을 이야기합니다. 6관음 중에 성관음(聖觀音), 천수관음(千手觀音)이 있는데 천수관음은 관세음보살께서 중생들을 다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져 주기 위해서 손이 하나 가지고 부족하고, 둘 가지고 부족해서 천 개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천 개라고 하는 말도 숫자로 천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천은 많다는 숫자입니다.
한없이 많은 손길로서 중생을 보살핀다는 것이 바로 천수관음입니다.
그 다음에는 십일면 관음이라 해서 얼굴의 모습과 표정이 열 한가지로 나타나는 관세음보살님이십니다.
특히 석굴암 본존불 뒤에는 십일면 관세음보살의 표정이 있습니다.
열한 가지의 표정을 통해서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그런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입니다.
그 다음에는 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이라고 해서 여의륜관음보살님으로 나오시며, 그 다음에는 마두관음(馬頭觀音), 마두관음은 몸은 사람이고 머리는 말의 머리입니다. 그리고 준제관음(准提觀音)이 있습니다.
준제관음에는 준제진언도 있고, 준제주 신앙이 특별히 있습니다. 이와 같이 관세음보살은 성관음, 천수관음, 십일면관음, 여의륜관음, 마두과음, 준제관음 등 6관음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조석으로 독송하는 <천수경>에 보면,
나무관세음보살마하살
나무대세지보살마하살
나무천수보살마하살
나무여의륜보살마하살
나무대륜보살마하살
나무관자재보살마하살
나무정취보살마하살
나무만월보살마하살
나무수월보살마하살
나무군다리보살마하살
나무십일면보살마하살
이러한 내용으로 염불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거의가 관세음보살님입니다.
맨 처음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은 그대로 관세음보살이시고, 대세지보살은 항상 아미타불을 관세음보살과 함께 양쪽에서 받들고 있기 때문에 관세음보살과 항상 뜻과 행동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실은 관세음보살과 동일합니다.
천수보살님도 관세음보살이고, 여의륜보살, 대륜보살도 마찬가지로 관세음보살이고, 관자재보살도 관세음보살이고, 정취보살도 관세음보살이고, 만월보살도 관세음보살입니다.
관세음보살은 모습이 둥근 달과 같이 아주 훌륭하다 해서 만월보살이라 합니다.
그리고 수월보살은 물 속에 비춰진 달과 같이 그렇게 광명 스럽고 환하다고 해서 수월보살입니다.
그 다음에는 군다리보살인데, 군다리라고 하는 것은 범어이고 뜻으로는 감로수병(甘露水甁)이 바로 군다리병입니다.
군다리는 병의 이름입니다.
항상 관세음보살은 감로수병을 들고 중생에게 감로수를 내려 주신다고 해서 바로 군다리보살입니다.
그리고 십일면보살 등등 이와 같이 관세음보살은 많은 명칭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런 관세음보살은 결국 어느 분이시냐 하면 다른 분이 아니고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십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자비로서 분신하신 분이 바로 관세음보살이십니다.
관세음보살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 자비의 분신이십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서 관세음보살님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러한 관세음보살의 내력을 밝힌 경전으로서는 <법화경> 보문품(普門品)이 있고 <능엄경> 이십 오원통의 내용을 설명할 때 관세음보살이 중심으로 나오고,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 중 오십 삼 명의 선지식(善知識)이 나오는데 그 중 한 분의 선지식으로 관세음보살이 나오십니다.
이렇게 <화엄경> 입법계품이나 <능엄경> 이십오원통문이나 이러한 경전이 있지만, 가장 관음 신앙의 기본이 되는 것은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입니다
<법화경> 보문품에서는 관세음보살에 대해서 잘 말씀하고 계십니다.
<법화경> 보문품에 의하면,
"관세음보살님은 왜 관세음보살님이십니까?"
이러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여기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관세음보살은 사바세계의 중생이 고통이 있을 때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께서 자신의 명호(名號)를 부르는 마음을 잘 관찰해서 모든 고통을 제거해 주신다."고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소리를 관찰해서 그 속에 숨겨져 있는 모든 고통을 다 없애 주신다고 해서 바로 관세음보살이십니다.
이러한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공양(供拜)하고, 일심으로 예배(禮拜)하고, 일심으로 이름을 부르면 칠난(七難)과 삼독(三毒)을 소멸하고 이구(二求)를 성취합니다.
이것이 관음신앙의 기본입니다.
첫째, 칠난이란 밖에서 오는 환난으로서, 화란(火難), 수란(水難), 풍란(風難), 험란(險難), 귀란(鬼難), 옥란(獄難), 적란(敵難)입니다.
이에 대하여, 관세음보살에 대한 신앙이 철저하면 설사 불을 만나다 하더라도 불의 환난을 당하지 않고, 어떤 큰물, 바다,강에서도 화를 당하지 않고 폭풍을 만난다 하더라도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으로 모든 귀란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옥란, 일체 감옥의 환난에서도 관음신앙으로 말미암아 모두 액을 면할 수 있으며, 또 많은 도둑들에게 재앙을 만나게 되는 때도 관세음신앙으로 말미암아 모두 다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칠난입니다.
둘째, 삼독에 있어서는 사람의 마음 속에 탐심이 많이 있다고 하더라도 관세음보살님께 기도를 지극 정성으로 드리면 허욕과 탐심(貪心)이 서서히 적어져서 교육과 인격이 원만한 인품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관음신앙입니다.
그리고 음욕(淫慾)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관세음보살님께 예배하고, 공양하고 , 철저히 신앙하면 음욕심이 순화되어서 아주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대인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끝으로 어리석음이 많다고 하더라도 관세음보살님께 기도하면 어리석음을 다 소멸합니다.
이와 같이 탐진치 삼독과 기타의 모든 음욕, 이런 것을 다 관음신앙을 통해서 모두 물리칠 수 있기 때문에 칠난을 제거하는 동시에 삼독을 순화시킵니다.
관세음보살님의 신앙은 이것 뿐이 아니라 바로 어떤 사람이 단정한 남자아이를 구한다든지 여자아이를 구한다든지 다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 해서 이것이 바로 이구(二求)를 성취한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님께서 서른 두 가지 몸으로 중생들을 부처님의 세계로 인도하십니다.
서른 두 가지는 부처님의 몸으로서 제도를 받을 사람에게는 부처님의 몸으로 나타나서 그 사람을 인도하시고, 스님네들의 몸으로서 제도가 될 사람은 스님네들의 몸을 통해서 중생을 제도하십니다.
더 나아가서는 국왕 대신이나 팔부신장의 몸으로서 제도가 될 사람은 또 그와 같은 몸으로 제도를 하십니다.
그러면 기본 방법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관음신앙의 방법에 있어서는 보살님의 아름을 일심으로 부르고 예배하고 공양하고 항상 관세음보살님께 가까이 가기를 원하고 항상 우러러 받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가운데 우리의 소원이 모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일심칭명(一心稱名), 예배공양, 상원상첨앙(常願常瞻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관세음보살에 대한 신앙체계를 아주 강하게 세워서 독실한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은 해안고절처, 보타낙가산(海岸孤絶處寶陀洛迦山)을 도량(道場)으로 하고 계십니다.
그러면서도 관세음보살은 시방(十方)에 원통(圓通)하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관세음보살님은 도량의 교주(道場敎主)이시고 원통교주(圓通敎主)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은 어떠한 곳에 계신다 하더라도 시방세계에 두루 통하지 않는 곳이 없어서 바로 원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도량에 계시자만, 시방 어느 도량에 감화(感化)하지 않는 곳이 없
어서 도량교주이십니다.
관세음보살은 또 원통회상불보살(圓通會上佛菩薩)이십니다.
왜냐하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능엄경>을 설하실 때에 제자들한테 각자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도리, 스스로 해탈한 자기의 길을 말씀하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관세음보살만이 원통으로서 상수제자가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관세음보살은 원통회상불보살이십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은 삼십이응신(三十二應身) 십사무애력(十四無碍力) 사부사의덕(四不思議德)을 갖추고 계십니다.
이리하여 관세음보살은 중생을 받아들이고 중생을 인도하는데 걸림이 없으십니다.
그런 까닭에 관세음보살은 팔만사천 삭가라수(삭迦羅首), 팔만사천 모타라비(母陀羅譬), 팔만사천 청정보목(淸淨寶目)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팔만사천 삭가라수라고 하는 것은 관세음보살님의 머리가 아주 둥글게 우주에 그대로 꼭 차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삭가는 윤위(輪位)란 뜻입니다. 모타라비라 하는 것은 인상(印相)이라고 합니다.
인상이란 관세음보살님이 손의 모습을 턱 내보이시면서 중생을 어루만지는 손길이 하나 둘이 아니라 팔만사천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팔만사천 가지가 되는 청정하고 보배로운 눈으로 우주와 중생의 실정을 살펴서 자비로서 고통을 제거하고 즐거움을 얻도록 하는 분이 바로 관세음보살님이십니다.
이와 같은 신앙 체계로 우리 나라에서는 관음신앙이 확립되었습니다.
이러한 관음신앙은 신라시대 때부터 오늘날까지 불교신앙 중에서 대표를 이룬다고 하겠습니다.
白衣觀音無設設 백의관음무설설
南巡童子不聞聞 남순동자불문문
甁上綠楊三際夏 병상록양삼제하
巖前翠竹十方春 암전취죽시방춘
백의 관음은 말함이 없이 말씀하시고
남순동자는 들음이 없이 듣도다.
병에 꽂힌 푸른 버들은 영원한 여름이요,
바위 앞 대나무 숲은 우주의 봄이로다.
약사 신앙
다음은 약사신앙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약사여래 부처님의 갖추어진 명호는 약사유리광 여래이십니다.
약사여래 부처님에 대해서 <약사경>을 통해 알아본다면 약사여래 부처님은 본래 열두 가지 큰 원을 세워서 그 원을 그대로 성취하셨기 때문에 동방만월세계를 이루셨습니다.
그리하여 약사여래 부처님으로서 중생을 보살피게 된 것입니다.
약사여래 부처님의 열두 가지 원이라고 하는 것은, 첫째로, 내가 성불할 때에 나와 모든 중생이 몸의 광채가 찬란해서 온갖 세계를 비추며 서른 두 가지의 대장부 상을 갖추기를 원한다는 원을 세우셨습니다.
두 번째로는, 내가 성불할 때에 몸이 유리와 같이 안과 밖이 청정하여 아무 더러움이 없고 중생들이 어두운 곳이 있으면 내가 그들을 비추어 아무 불편이 없게 되기를 원한다고 하는 원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성불할 때에 무량한 지혜 방편을 갖추어 중생들이 흡족히 수용할 수 있기를 원한다고 하는 원을 세우셨고, 또 내가 성불할 때에 중생들이 다른 외도(外道)의 길을 걸으면 다 보리도에 돌아와 편안히 앉아서 모든 대승법을 실천하여 거기에 들어가를 원한다는 이런 원이라든지, 내가 성불할 때에 나의 교법중에 수도하는 중생이 다 청정하고 근엄한 계율을 지키게 되기를 원한다고 하는 원이며, 더 나아가서는 내가 성불할 때에 중생이 혹 불구이거나 눈과 귀가 어둡거나, 등이 굽든지, 피부색이 이상하거나, 정신에 광기가 있는 중생은 내 이름을 들으면 즉 약사여래 유리광 여래라고 하는 이름을 들으면 다 회복되어 신체가 구족하고 신색이 원만하기를 원하는 원입니다.
이것이 바로 약사여래 본연의 기본적인 원이 지금 나오는 바로 이 원입니다.
내가 성불한 후에는 중생의 몸이 불구이거나 눈과 귀가 어둡거나 등이 굽든지 피부색이 이상하든지 정신에 이상이 있는 중생은 약사유리광 여래의 이름을 듣는 순간에 다 본래대로 돌아와서 건강해지기를 원한다고 하는 원이 바로 약사여래로서의 중생의 병고를 보살피는 근본원이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내가 성불할 때에 중생이 고통에 시달리거나 의지할 곳 없고 가난하여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중생은 내 이름을 한 번 들으면 모든 환난을 다 여의고 마침내 성불하기를 원한다고 하는 원과, 내가 성불할 때에 여인들이 여성의 몸을 바꾸고자 하면 내 이름을 한 번 들으면 곧 대장부의 몸으로 태어나기를 원한다고 하는 것과, 내가 성불할 때에 사견(邪見)이 많은 중생은 다 정견(正見)에 앉아 있기를 원한다고 하는 것과, 내가 성불할 때에 감옥에 구속된 중생은 다 나의 복력(福力)으로 다 석방되기를 원한다고 하는 것과, 내가 성불할 때에 중생이 배고픔에 허덕이면 내가 그들에게 먼저 좋은 음식으로 채워주고 나중에는 무상진리(無上眞理)를 깨닫게 하기를 원한다고 하는 원을 발원하셨습니다.
또 내가 성불할 때 중생이 의복이 없어 몸을 보호하지 못하고 해충들에게 고통을 당하면 내가 저들에게 충분한 의복을 주어 풍족하게 살 수 있기를 원한다 하는 이러한 원을 약사여래 부처님께서 세우셨고, 그 원이 성취되도록 팔만사천 보살행을 닦았기 때문에 바로 약사여래 부처님이 되셨고 만월세계가 성취된 것입니다.
이상이 약사여래 부처님께서 보살도를 닦은 본래의 원입니다.
이러한 약사여래 부처님은 계속해서 중생을 보살피고 중생의 병고를 치료하고 계시는 부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바로 약사여래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경향으로 볼 때 약사여래를 모신 약사전(藥師殿)은 보통 극락전(極樂殿)과 마주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왜냐 하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약사신앙을 통해서 정신적이든지 육체적이든지 병고를 물리치기를 발원하는 뜻이요, 그뿐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극락세계에 가서 복락(福樂)을 구족히 하고자 하는 원에 의해서 약사여래불을 모신 약사전과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을 함께 받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생전신앙과 사후신앙이 상당히 조화를 이룬 신앙체계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법당중에 약사전이라고 하는 법당, 만월보전(滿月寶殿)이라고 하는 법당, 유리광전(琉璃光殿)이라고 하는 법당은 다 약사여래 부처님을 모신 법당입니다.
이와 같이 약사여래 부처님은 중생의 모든 병고를 잘 치료해 주고 잘 보살펴 주는 부처님이십니다.
그런 까닭에 약사여래불에 대한 신앙은 우리나라에서 일찍이 신라시대 때부터 많은 성행을 보아 왔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계속해서 약사신앙이 봉행 되고 있습니다.
東方世界名滿月 동방세계명만월
佛號琉璃光皎潔 불호유리광교결
頭上旋螺靑似山 두상선라청사산
眉間豪相白如雪 미간호상백여설
동방만월세계의
유리광 여래불이시여
머리 위의 선라는 산같이 푸르고
미간의 백호상은 눈같이 희도다.
미타 신앙
다음은 관음신앙, 약사신앙에 이어서 아미타불 신앙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아미타불 신앙은 관음신앙과 함께 불교의 신앙체계에 큰 두 흐름을 이루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은 대자대비로 많은 중생을 보살피는 생전 신앙으로서 중심을 이루고 있고, 아미타불 신앙은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미타불 신앙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드리면 굉장히 내용도 많고 또 여러 가지 드릴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간단하게 세 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세 가지란 아미타불에 대한 문제와, 극락세계에 대한 문제와 극락세계에 어떻게 갈 수 있느냐 하는 왕생극락에 대한 문제입니다.
첫째로 아미타불은 무슨 말이냐 하면, 범어로 아미타바라고 하는 말이 있고 또 불타(佛陀)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미타불이라고 하는 말은 아미타바 붇다에서 나온 말입니다.
여기에 포함된 뜻을 알아본다면, 아미타라고 하는 말은 무랑수(無量壽) · 무량광(無量光)의 뜻이 있습니다.
아미타불은 수명이 한이 없고, 광명이 한이 없으십니다.
무량한 수명을 가지신 분이 아미타불이신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대아미타경(大阿彌陀經)>에서는 여러 가지로 존칭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미타불은 무량수불, 무량광불, 무변광불, 무애광불, 무대광불, 여왕광불, 청정광불, 환희광불, 지혜광불, 불단광불, 난사광불, 나침광불, 초일월광불이십니다.
아미타불은 이와 같이 받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아미타불을 무량수불, 무량광불, 감로왕불로 신앙합니다. 아미타불은 항상 감로의 극락세계로 인도하시는 부처님으로 봉존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미타불께서는 어떻게 해서 아미타불이 되셨느냐 하면, 역시 과거에 법장(法藏) 비구로서 48가지 원을 세워서 그 한없는 자비행을 닦으시고 보살행을 닦으셨기 때문에 아미타불이 되셨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아미타불이 대승불교에서 어떠한 의미가 있느냐 하면, 대승불교에서 불 때 아미타불은 다른 분이 아닙니다. 아미타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극락세계로 중생을 인도하고자 이렇게 아미타불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내용은 <법화경> 여래수량품에서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다음에는 극락세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극락세계는 사바세계와 대립되는 말입니다.
사바세계(娑婆世界)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섞여 있고 악한 것이 많다고 하여 사바세계인데 극락세계(極樂世界)는 아무 고통이 없다는 뜻입니다.
일체 고통이 없는 세계가 극락세계입니다.
그런데 극락세계에 대한 명칭을 혹은 극락세계라 하고, 혹은 극락정토(極樂淨土)라 하고 혹은 서방정토, 극락국토, 안락국토, 안락정토, 안락세계, 안락국, 안양정토, 안양국 등 많은 이름으로 극락세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미타경에서는 극락세계를 어떻게 말했느냐 하면 극락세계에는 일체 고통이 없고 다만 즐거움만 받는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리불(舍利佛)이여! 피토(彼土)를 하고(何故)로 명(名)이 극락(極樂)고. 아미타불이 계신 세계를 극락이라고 하는 뜻을 아느냐? 그 나라 중생은 모든 고통이 없고 다만 즐거움만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극락이라고 한다] 이렇게 말씀을 헸습니다.
신라시대에 원효스님께서는 극락세계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원호스님께서는 극락세계를 법성토(法性土),실보토(實報土), 수용토(受用土), 변화토(變化土)로 구분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법성토란 우주의 근본실상, 우주의 근본 그 자체를 극락세계로 보는 것입니다.
실보토라고 하는 것은 사실로 보살행을 닦아서 보살행의 보답에 의해서 이루어진 국토가 실보토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법장 비구가 48 가지 원을 세워서 보살행, 자비행을 열심히 닦은 보답에 의하여 이루어진 국토이기 때문에 실보토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수용토이고, 변화토라고 하는 것은 중생에게 여러가지 모습을 통해서 변화로서 나타내는 모습, 나타내는 세계, 이런 것은 이런 것이 바로 극락세계의 변화토입니다.
원효스님께서는 이와 같은 원리로서 극락세계를 설명하셨습니다.
원효스님의 말씀과 같이 극락세계라 하는 것은 비단 서쪽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 그 자체가 바로 극락세계인 것입니다. 그러나 특히 서쪽으로 표시하는 것은, 서방은 청정한 방소를 의미한다 해서 서방 극락세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이 있기 때문에 영주 부석사에 가면 본존불(本尊佛)이 아미타불이십니다.
부석사는 의상대사가 화엄경을 선양한 화엄사찰의 총 산입니다.
화엄사찰에서 왜 비로자나불을 모시지 않고 아미타불을 모셨느냐 하는 것은 기록에도 나옵니다만 매우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화엄경에 있어서 아미타불은 열반에 들지 않고 항상 중생을 보살피고 계시는 부처님으로 표현되며 극락세계는 시방정토(十方淨土) 그 자체가 극락세계입니다.
그리하여 사실에 있어서 극락세계는 화장세계의 한 표현이며 아미타불은 열반에 드시지 안하고 온 우주를 정토로 나타내시는 부처님을 아미타불로 모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화엄종 사찰에서 아미타불을 모신다고 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큰 것입니다.
그러므로 극락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은 온 우주의 근본, 창정한 곳을 다 극락으로 보는 것이 화엄종과 선종에서 보는 극락관입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 법에 있어서는 극락이 따로 있어서는 극락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 진리의 청정한 본연의 세계가 모두 극락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극락세계에 우리가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극락세계에 가는 것을 염불왕생(念佛往生)이라 한 마디로 말을 합니다.
부처님을 잘 생각하고 부처님에 대한 신앙이 철저하면 바로 극락세계에 가는 것입니다.
이에 아미타불에 있어서는 특히 중요한 것이 아미타불께서 원을 세우기를 누구든지 내 이름을 열 번만 부르는 사람은 다 극락세계에 가서 태어나기를 원한다고 하는 원을 세웠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념왕생(十念往生)입니다.
아미타불을 단 열 번만이라도 부르는 사람은 다 극락세계에 가서 태어 나도록 하는 것이 아미타불의 원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아미타불에 대한 염불을 하면 순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극락세계에 가는 것이 아니라 아미타불이 인도해 주는 힘을 빌려서 더욱 빠르게 갈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염불은 돈독한 신앙심에 의해서 하는 것으로 조선시대에 서산(西山)스님께서도 음과 같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한 마디 염불을 한다면 이것은 바로 십만 억겁의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한 번 염불을 해도 십만 억 겁의 업장을 소멸하는 염불을 하는 데야 말할 것이 뭐 있으며 한 번 염불을 해도 십만 억겁의 공덕을 성취하는데 많은 염불을 하는 데야 더 말할 것이 뭐가 있느냐] 이렇게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염불에는 서산스님께서 네 가지로 구분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입으로 항상 아미타불에 대해서 외우는 것이고, 둘째는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세째는 마음으로 아미타불의 모습을 관찰하고 아미타불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넷째는 실상 염불이라 해서 그대로 아미타불의 세계와 내가 하나가 되도록 노력사는 상태가 바로 실상 염불입니다.
이러한 간절하고 독실한 염불을 통해서 다 극락세계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미타경에 보면 어떤 사람이든지 하루나 이틀이나 아니면 사흘이나 나흘이나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일심불란(一心不亂)으로 염불을 하게 되면 다 극락세계에 간다고 말씀을 하였습니다.
이 일심의 기도에 의해서 극락세계에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특별히 말씀드리고자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석가모니 본존불신앙이 있고 또 관세음 신앙, 약사여래불신앙, 아미타불신앙이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부처님을 우리 불자들이 다 받들다 보니까 여기에 신앙체계가 복잡한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의 불제자들은 이 절에 가면 관세음보살님에게 기도하고, 저 절에 가면 아미타불께 염불을 하고, 또 다른 절에 가면 약사여래불께 기도를 하고 석가모니불께 기도를 해서 부처님 신앙과 보살님 신앙이 일정하지 않고 왔다 갔다 합니다.
신앙의 어떤 혼란상과 복잡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 불자들은 각자 자기 자신의 원불신앙(願佛信仰)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항상 받들어 모시고 내 자신이 원하는 원불신앙을 각자 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신라시대의 자장법사는 문수보살을 원불(願佛)로 모셨고, 원효스님은 아미타불을 원불로 모셨고, 의상스님은 관세음보살을 원불로 모셨습니다.
이와 같이 자가가 원해서 간절히 받들어 모시는 원불신앙이 있습니다.
이러한 원불신앙을 중심으로 간절하고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은 이상과 같이 불고의 신앙체계를 말씀드렸습니다.
無量光中化佛多 무량광중화불다
仰瞻皆是阿彌陀 앙첨개시아미타
應身各挺黃金相 응신각정황금상
寶界都旋碧玉螺 보계도선벽옥라
부처님이 많으시지만
다 아미타불을 우러러 받드는 도다
몸에는 황금빛을 띠시고
머리는 보계로 장엄하시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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