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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 Buddhsim, 부처님 말씀/불교 경전

1. 금강경에 대하여

by Yeon Ha Cheon 2025. 3. 28.

1.    개요

(응)(무)(소)(주) (이)(생)(기)(심)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산스크리트어로 와즈라체디까 쁘라갸빠라미따 수뜨라(वज्रच्छेदिकाप्रज्ञापारमितासूत्र) 대승 불교의 경전입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의 소의경전(所依經典)입니다.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경》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한 곳에 집착하여 머물러 있는 마음을 내지 말고, 모양이 없는 진리로서의 부처를 깨달아야 된다고 하였다.

한반도에 불교가 들어올 삼국시대 때부터 같이 들어온 서적이며, 따라서 한국에서 가장 널리 퍼진 대표적인 불경이기도 합니다.
유식학파로 유명한 인도의 무착과 세친의 주석과 중국의 구마라습의 주석을 포함하여 전세계적으로 주석서 800종이 있습니다.

소의경전(所依經典)은 불교 경전 중 신행과 교의에 근본이 되는 경전을 말합니다. 신심의 전제가 되어 실천 정신의 근본으로 삼습니다. 

소의경전의 예시 화엄종의 화엄경, 천태종의 법화사부경, 정토종의 정토삼부경, 조계종의 금강경, 법상종의 미륵삼부경. 

소의경전의 의미

소의(所依)는 의지할 바 대상을 가리키며, 직접적이라 힘이 강하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신행과 수행하는 데 있어 지향할 바, 즉 실천 정신의 근본으로 삼는 경전입니다. 

흔히 이러한 경전들은 신심의 '전제'가 되고, 전제는 비판과 회의가 없는 해석을 낳습니다


무착과 세친
한 집안에서 형제가 출가하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 아닙니다.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았고 이곳 저곳을 수소문해 겨우 형제·자매 스님들의 소재를 파악했을 때는 대부분 “그게 무슨 대수냐”며 취재를 거부했다. 현재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이들 스님들을 통해 확인한 결과 대략 100여 쌍의 형제·자매 스님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한 집안 형제의 출가는 언제부터 있었을까.
그리고 유명한 인물은 누가 있을까. 흔하지 않은 형제의 출가 연원은 석가모니부처님 재세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여러 경전에 의하면 석가모니부처님이 성도한 이후 고향에 돌아왔을 때 이복동생인 난다와 사촌동생 아난다가 함께 출가해 부처님에게 귀의했습니다.
이 중 사촌 동생인 아난다(줄여서 아난이라고도 한다)는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다문제일(多聞第一)로 불리고 있습니다.

『대지도론』에 따르면 아난다는 용모가 출중하여 출가 후 많은 부녀자들로부터 유혹을 당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이 귀향했을 때에 난다, 아나율 등과 함께 출가한 이후 대중들의 천거에 의해 20여 년간 부처님의 시자(侍者)를 맡아 가까이서 모시며 가장 많은 말을 들었기에 ‘다문제일 아난다’로 불리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많은 경전이 아난다의 기억에 의해 기술되었다는 것은 불자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입니다.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천안제일 아나율 역시 부처님과 같은 석가족 출신으로서 형제 여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부처님과 같은 집안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아나율은 부처님 앞에서 졸다가 책망을 듣고 서원을 세워 잠자지 않고 수행하다 두 눈을 못 쓰게 된 대신 심안(心眼)이 열렸다고 합니다.

석가족의 많은 사람들이 출가해 부처님을 따랐으므로 이들처럼 잘 알려진 10대 제자 외에도 많은 형제들이 출가 사문의 길에 들어섰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후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를 아우른 세친(世親) 스님과 유식학의 기초를 닦은 무착 스님이 형제 스님의 계보(?)를 잇는다. 또 유명한 불교학자 사자각(師子覺)이 이들의 아우이기도 하다.

세친은 처음에 소승불교의 최대학파였던 설일체유부와 경량부의 사상을 공부해 소승불교의 여러 사상과 특징을 잘 간추린 것으로 유명한 『아비달마구사론』을 세상에 내 놓았습니다.
이 책은 인도, 중국, 한국, 일본 등지에서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세친은 이후에 형님 스님인 무착의 권유로 대승불교로 전향해 미륵-무착으로 이어져 확립된 유식사상을 결집합니다.
무착과 세친 형제 스님의 대승불교는 유가행파로 불리어 용수 등의 중관파와 더불어 인도 대승불교의 양대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

이외에도 중국이나 한국의 불교사에도 여러 형제 스님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들이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크게 남아 있지 않습니다.

중국 송나라 서예가인 장즉지(張即之)가 1253년 7월 18일에 쓴 금강경

 

 

2.    제목

 

2.1. 반야바라밀

대승 경전이다 보니, 제목부터가 대승불교의 근본적인 개념인 '반야바라밀'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반야바라밀은 산스크리트어 쁘라갸빠라미따(Prajñ
āpāramitā) 음역한 것으로, '깨달음으로 이끄는 지혜'를 가리킵니다.

2.2. 금강

앞에 붙은 한자 '금강'은 산스크리트어 와즈라체디까(Vajracchedikā)를 뜻으로 풀어 해석한 것인데, 뜻은 '와즈라(Vajra)[와 같이 강한 힘으로 절단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금강반야바라밀경'이란 제목의 뜻은 '마음 속의 분별, 집착, 번뇌 등을 부숴버려 깨달음으로 이끄는 강력한 지혜의 경'입니다
.

2.2.1. 다이아몬드인가, 번개인가?

2.2.1.1. 한자문화권에서

한자문화권에서는 와즈라의 뜻이 다이아몬드인지 번개인지 의견이 분분한데, 이는 와즈라를 번역한 한자어 금강(金剛)의 뜻이 중의적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한자어 금강만이 아니라 원어인 산스크리트어 와즈라 또한 벼락(번개) 혹은 다이아몬드 둘 다를 뜻하는 중의적인 단어입니다.
그래서 한문으로는 금강경이 아니라 벽력경(霹靂經)으로도 옮길 수 있습니다.
한자문화권에서는 불교 문헌을 포함해 가장 단단한 물체를 금중최강(金中最剛). 즉 줄여서 금강(金剛)이라고 부르고, 어떤 물체가 강한 힘으로 파괴하는 상태를 보고 능단금강(能斷金剛: 능히 금강도 부술 수 있는 것)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와즈라체디까(Vajracchedik
ā)의 한자 번역은 벽력능단금강(霹靂能斷金剛)이 적절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어쨌든 구마라집은 금강(金剛)으로 번역했습니다.

2.2.1.2. 영어권에서

후세의 영역자들은 가장 단단한 것(the hard or mighty one) 다이아몬드의 특성을 입혀 The Diamond Sutra / The Diamond Cutter Sutra라고 번역했습니다. 처음으로 영역한 1894년 옥스포드 대학교 출판사본의 제목은 산스크리트어를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The Vagrakkhedika or diamond-cutter, in Buddhist Mahayana Texts.

(
산스크리트어) Vajra → 번역(번개와 금강 중 금강의 뜻만 살림) → 금강(金剛)
금강(金剛), Vajra → 중국어와 산스크리트어 동시 번역 → Diamond(영어)

2.2.1.3. 결론

금강의 영어 번역은금강석(金剛石)일 때만 다이아몬드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원래 불교의 금강과 직접적으로 치환된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금강을 물리적인 보석인 '다이아몬드'로 번역하는 것은 금강의 의미를 확실히 해야 합니다.

5
세기 초 구마라집이 한 한자번역은 산스크리트어 그대로가 아니라 한자 문화권에 맞추어 의역함이 특징입니다.
구마라집은 인도 불교 문헌을 번역함을 두고 "이미 입에서 한 번 씹은 밥을 다른 사람에게 먹이는 것과 같아, 원래의 맛을 잃는 것은 물론 심지어 구역질까지 느끼게 합니다." 하였다. 한역에 대해서 "천축의 풍습은 문채를 몹시 사랑하여 그 찬불가는 지극히 아름답다. 지금 이것을 한문으로 옮겨 번역하면 그 뜻만 얻을 수 있을 뿐 그 말까지 전할 수는 없다." 하면서 민감하게 여겼습니다.

이 경의 핵심은 집착번뇌도 끊어버리는 벼락같은 파워를 가진 '지혜'를 뜻하므로 이 지혜가 가리키는 주요 포인트를 벼락에 둘 수도 있지만, 구마라집은 벼락에 있는 압도적인 ''의 요소는 이미 금강에 내재한다고 본 듯합니다.
그렇게 볼 때 '지혜는 번뇌를 거머쥐고 절단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 [밀린다왕문경]의 논사(論師) 나가세나 존자의 답변에서 보듯 가장 단단한 Diamond 혹은 Diamond Cutter라는 영역은 의미상으로 적절해 보입니다.

그러나 불교의 금강이란 금강저 혹은 금강륜이라는 물건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하지만 불교에서 금강, 금강저의 의미는 '깨어지지 않는 지혜의 상징'이며 '모든 번뇌를 자를 수 있는 지혜의 상징'입니.
이에 따르면 '어떤 번뇌도 능히 깨뜨려 없앨 수 있는 금강과 같은 지혜의 경전'이 됩니다.

, 어느모로 보나 중국어, 영어 모두 정확하고 유용한 번역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한자문화권의 많은 승려들은 반야바라밀이 '최고의 바라밀'이라는 점 및 금강경 내에 언급된 '무주상보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구절 등으로 인해 반야바라밀을 6바라밀 중 첫 번째로 등장하는 '보시바라밀'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반야바라밀'이라는 말 자체가 뜻으로 풀어 해석하면 오히려 6바라밀 중 맨 끝에 위치하는 '지혜바라밀'과 동의어이고, 금강경 내용 자체도 보시보다는 올바른 지혜를 확립하는 것에 더욱 중점을 두고 내용을 전개하기 때문에 보시로만 뜻을 국한하기는 어렵습니다.

한편으로, 불교는 기원전 2500년전 출현한 종교로 그 당시에는 다이아몬드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경전명칭을 다이아몬드로 해석하는 것이 맞지 않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금강경의 금강은 무엇이든 부수어버린다는 고대 인도 신화의 무기 이름인 금강저(金剛杵
वज्र Vajra)에서 유래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르면 금강경의 의미는 절대 부수어 지지 않는 중생의 단단한 인식을 무엇이든 부수는 무기인 금강저로 부수어 버린다는 뜻으로 부처님의 지혜, 설법을 금강저에 비유한 것입니다.

이 경전에서는 중생의 인식을 모두 부수어 없애야 부처의 경지에 이를 수 있으므로 중생들이 스스로를 속박하고 있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모두 공함을 설하고, 부처님의 법마저도 깨달음을 위한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님을 뗏목의 비유로 설하였으며, 일체의 모든 것이 실상이 아님을 확연히 알고 일체의 모든것에 마음이 머무름이 없는 상태에서 생각과 마음을 일으키고 행하여야 중생이 자신의 인식으로 만들어낸 이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음을 직관적으로 설하였습니다.



3.    역사

 

금강경의 성립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학계는 대략 서기전 1세기-서기 1세기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 사상과 관련된 내용을 설명하면서도 정작 ''이라는 단어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보살행에 대해 서술하면서도 '보리심'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점 등으로 미루어, 대승불교 경전 중에서도 상당히 초기에 정립된 경전으로 보는 의견이 많습니다.
특히 대승경전 특유의 여러 불보살들이 잔뜩 나타나지도 않고석가모니와 그의 제자 1250명만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초기 불교 경전들과 유사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이유로 반야경보다 이전에 성립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간다라 불경에서 발견된 텍스트 중 가장 오래된 불경은 소품반야경(A
ṣṭasāhasrikā Prajñāpāramitā)으로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의 연대가 서기 75년으로 나왔습니다
소품반야경이 성립된 때는 기원전 2세기라고 추정합니다.
일반적으로 금강경을 반야경 이전에 성립되었다고 여기므로 금강경이 성립된 연대는 더 과거일 수도 있습니다
반야경 여기에 아함경에서 공 사상이 나온다는 연구결과도 있는데, 이것까지 고려하면 더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대개 서역승 꾸마라지와(Kumarajiva) 한문으로 옮긴 판본이 번역본들 중 가장 오래되었다고 인정받는데산스크리트어판에 비해 생략된 구절이 많습니다
이후 보디루치(한자 이름은 '보리류지'), 파라마르타(한자 이름은 '진제'), 현장법사의정 등의 번역은 대체로 원전 번역을 충실히 따르는 편입니다.
하지만 한문 특유의 운율을 살린 유려한 번역 덕에 한자 문화권 국가에서는 꾸마라지와가 한 번역본이 널리 퍼졌습니다.

티베트어 역본도 있는데, 8세기말~9세기 초엽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재 정립된 산스크리트어 판본은 이 티베트어 역본과 아프가니스탄 바미안 석굴에서 발견된 간다라어 역본 등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내용상으로 석가모니가 금강경의 불법을 설한 장소는 슈라와스띠(Sravasti 舍衛城기원정사(祇園精舍)입니다.
기원정사의 터에는 지금도 석가모니가 머무르던 방(여래향실) 자리가 있기 때문에, 기원정사 여래향실 앞에서 많은 신자들이 모여 금강경을 합송하기도 합니다.

 

 

4.    내용

4.1. 길이 및 목차

금강경은 약 6천 단어 정도의 길이로, 불교경전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짧은 축에 속한다. 개인 차가 있지만 직접 소리 내어 끝까지 읽어 보면 대략 20~30분 정도가 걸리며, 스님들처럼 리듬을 타면서(...) 염불을 하면 40분 가량이 걸립니다. |
구마라집본에는 한자 총 5149자가 쓰였습니다.

금강경에는 원래 목차 구분이 없었는데양무제의 아들 소명태자가 구마라집의 역본 내용을 32개 분()으로 나누고 각 분에 소제목을 달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이게 유명해져서 되려 후대의 산스크리트 사본들이 이 분류를 따르는 경우도 종종 발견된다. 독송할 때는 소제목은 빼고 읽습니다.

4.2. 서사구조

금강경의 전체적인 서사구조는 탁발을 하고 식사를 끝내고 앉은 석가모니에게 수보리(수부티) 존자가 '보살승에 나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머무르고, 수행하고, 마음을 조복받아야 하는지' 질문하고 석가모니가 그에 대해 대답하는 구조로 전개된다

https://youtu.be/rI6iAuwA5pE
우학스님 뜻풀이 금강경(1)

https://youtu.be/iY2oLbwklgg
우학스님 뜻풀이 금강경(2)

금강경의 대부분은 대화체로 이뤄져 있는데, 이 장면 이후로는 대부분, '부처님이 묻는다수보리가 대답한다부처님이 설명한다 → … 식의 루프를 타는데, 간혹 수보리가 다시 질문을 던진다부처님이 대답한 뒤 다시 묻는다수보리가 대답한다부처님이 설명한 뒤 다시 묻는다수보리가 대답한다 → …(생략)' 식으로 복잡하게 전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답구조가 계속 반복됩니다.

이렇게 비슷한 내용들의 문답이 반복되는 구조에 대하여 워낙 초기 경전으로, 그 시대에는 석가모니 말씀을 제자들이 종이에 받아 적을 수는 없어서 구전 즉 암송하여 전하다 보니 여러 사람들이 암송한 내용들을 모아 만드는 과정에서 반복되는 구조가 되었다고 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을 좋게 여겨 보살피시고 모든 보살이 좋게 여겨 의지할 수 있게 합니다.
세존이시여,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을 얻고자 하는 선한 남자와 선한 여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
훌륭하고 훌륭하다. 수보리야. 네 말처럼 여래는 모든 보살을 좋게 여겨 보살피고 모든 보살이 좋게 여겨 의지할 수 있게 한다. 이제 네가 청하니 마땅히 너를 위해 말하리라.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선한 남자와 선한 여인은 이와 같이 살아야 하며 이와 같이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
, 세존이여! 기쁘게 듣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렇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이른바 모든 종류의 중생, 알에서 태어나든, 태에서 나든, 습한 곳에서 생기든, 변화로서 생기든, 모습이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생각을 지닌 것이든, 지니지 않는 것이든, 생각을 지니지도 않고 지니지 않는 것도 아닌 것이든, 이 모든 중생을 내가 무여열반에 불러들여 이들을 열반에 이르게 하리라 하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을 열반에 들게 하여도, 실은 완전한 열반을 얻은 중생이 아무도 없다. 어째서인가? 만일 보살이 나라는 생각, 남이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오래 산다는 생각을 지니면 이미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위와 같이 대화의 처음은 수보리가 질문하여 시작하고 석가모니가 답변과 재질문을 하면서 전개됩니다.

마지막에는 석가모니가 다음과 같은 '사구게로 설법을 마치고, 일체 중생들은 이를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한다는 설명으로 경이 끝납니다.

  • tārakā timira dīpo/ māyā-avaśyāya budbuda /
    supina
    vidyud abhra ca/ eva draṣṭavya sasktam.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형성된 것은 참으로 이와 같이 보아야 하나니
의 가물거림, 등불과도 같고
환영, 이슬, 물거품과도 같으며
, 번개, 구름과 같다.’ 라고."

마지막 사구게는 비유적 표현을 써 이해하기가 쉽고, 노래처럼 외우기 편하다는 장점 때문에 진언처럼 외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소설 등 대중매체에서도 간간이 인용되곤 하는데, 대표적으로 고전소설 구운몽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4.3. 금강경의 주제

금강경을 읽다 보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산스크리트어 안웃따라쌈약쌍보디(anuttarā samyak-sabodhi)를 음차한 말로 '위없이 올바른 깨달음으로 향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석가모니는 금강경에서 이러한 마음을 내기 위해서는 '겉모습이나 현상 및 관념의 덧없음을 알아, 이들에 현혹되지 않은 채로 올바르게 관찰해서 깨달음을 향하는 순수한 마음을 내야'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실상 이 부분을 금강경의 핵심 주제로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금강경 내에서 석가모니는 앞서 수보리의 질문('보살승에 나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머무르고, 수행하고, 마음을 조복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육도윤회에 빠진 중생을 남김없이 제도하겠다는 마음을 내는 것 보시했다는 마음 없이 보시하는 것 온갖 모욕과 번뇌를 감내하고 원한을 일으키지 않는 것 등을 그 대답으로 제시합니다.
모두 대승 불교에서의 보살행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석가모니는 '~/는 사실 ~/가 아니기에 여래는 이를 ~()라고 설()했다'라는 설명 구조를 반복하며, 관념에 현혹되어 위와 같은 보살행을 한다면 그건 이미 제대로 된 보살행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보살행을 해도 관념에 현혹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야 한다는 이야기.같은 맥락에서 금강경은 당시 인도에서 유행하던 6가지 철학적 관념을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법상, 비법상'이라는 이름으로 칭하며 비판하고 있습니다.

각각에 대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
'를 불변한 실체로 보는 관념(아상)[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윤회하는 주체(, pudgala)가 있다고 보는 관념(인상)

중생과 부처를 구분하여 스스로를 포기하는 관념(중생상) 또는 사람들은 죄를 가지고 있으므로 죄를 씻음 받아야 한다는 관념

우주의 절대적 생명(jiva)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하는 관념(수자상)

세상에 불변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관념(법상)

세상에 불변의 법칙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념(비법상)


고타마는 인도의 오래된 종교체제 아래에서 고통받던 사람들을 구제하고자, 브라만교 사상의 허구성을 무너뜨리고자 한 것입니다.
구마라지바가 산스끄리뜨어로 된 금강경을 한문으로 번역할 때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으로 각각 번역한 앗뜨만, 뿓갈라, 삿뜨바, 지바는 금강경 작성 당시 또는 그 전부터 있던 관념인데 금강경에서는 수행자들은 바로 그런 상(임의의 관념)들을 버려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
'란 산스끄리뜨어로 앗뜨만인데, 아상은 사람에게 영원한 고정 불변의 실체 즉, 앗뜨만이 있다는 임의의 관념을 갖는 것입니다.

'
'이란 산스끄리뜨어로 뿓갈라인데, 인상은 고타마 싯다르타 사후에 부파 불교에서 주창한 개념으로서 사람에게 앗뜨만은 아니지만 그와 다른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있다는 임의의 관념을 갖는 것입니다.
현장 대사는 구마라지바 대사가 인상으로 번역한 뿓갈라를 한문으로 번역하지 않고 보특가라로 썼습니다.
적절한 번역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
중생'이란 산스끄리뜨어로 삿뜨바(존재하는 상태)인데, 중생상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나쁜 것들을 가지고 있으므로 구원이 필요하다는 임의의 관념을 갖는 것입니다.

'
수자'란 산스끄리뜨어로 지와 또는 지바(생명)인데, 자이나교에서 브라만교의 앗뜨만에 해당하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금강경 번역 당시 인도에만 있었고 중국이나 한국에 없던 이 개념을 당시 중국인들이나 한국인들에게 논할 필요가 없었다고 봅니다.
그러니 금강경은 엄밀히 말하면 인도사람들만 가진 사상을 반박한 것이므로 중국이나 한국에는 필요 없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강경에서는 아라한에 대해 '아라한의 경지를 얻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이미 삿된 생각에 빠져 있기 때문에 애초에 아라한이 아니다'라는 서술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상좌부 불교에서 아라한의 권위를 절대화하는 것을 비판하는 구절로 해석됩니다.
그러면서도 대승불교 특유의 보살의 10(bhumi) 과위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은 성립연대가 대승경전 중에서도 오래되었음을 시사합니다.

그 외에도 상(산냐)을 가지지 말아야 할 대상으로, 이 경에서는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장엄, 대신(큰 몸), 반야바라밀, 세계, 32, 바라밀, 마음, 구족함, 설법, 중생,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선한 법, 범부, 미진, 일합상, 법상 등 부파불교에서 폭넓게 논의되던 온갖 개념어를 언급하였습니다.

'
깨달았다 할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깨달았다는 것'이라는 부분도 수차례 나오는데, 이러한 부분은 대승 불교의 () 개념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되곤 합니다.

금강경을 읽다 보면 '만약 이 중에 사구게라도 지녀 읽고 전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공덕은 탑묘를 치장하는 것보다 크고도 클 것이다'라든지'갠지스 강의 모래 알갱이의 수만큼 보시를 하더라도, 이 경의 사구게를 지녀 읽고 전파하는 사람의 공덕이 그보다 훨씬 더 크다'는 구절이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금강경 중에서도 사구게만을 따로 독송하는 사람이 예나 지금이나 많은 데는 이 구절들의 영향도 있을 것입니다.

 

5.    취급

선종 6대 조사 혜능이 금강경 중 '응무소주 이생기심(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야 한다)' 이라는 구절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도 유명하며, 혜능은 제자들에게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을 수행법으로 권하기도 했습니다.
선종의 공안집에서도 금강경이 자주 인용된다. 이러한 전통 때문에 금강경은 대한불교조계종의 소의경전이기도 하며, 한국에서는 금강경을 중점으로 수행하는 수행 공동체들도 있습니다.
또한 불교의 경전임에도 불구하고 원불교에서도 경전으로 채택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경전에 비하면 내용이 난해하다 시피해서 초보 불자가 불교 입문으로서 접하기에는 다른 경전에 비해선 난이도가 높습니다.

백중(
우란분절)에 영가를 위해 읽어주는 대표적인 경전입니다.
이는 영가가 이미 윤회하여 태어난 상태라고 보기 때문에 복덕을 지어주기 위한 것입니다.
임종 후 사십구재에 읽어주는 경전의 위치는 아미타경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상좌부 불교
에서 내용상으로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몇 안 되는 대승경전입니다.
상좌부에서는 반야심경에 대해서도 무아와 공성에 대한 설명에 대해서는 그 의의를 큰 틀에서 공감하지만관세음보살의 부각, '공즉시색'에 대한 입장 차이, (sunyata)에 대한 상좌부와의 정의 차이 등으로 인해 그 내용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그에 비하면 금강경은 외형상으로나마 상좌부 경전과 비슷한 구성이고, 십지보살이란 주장 없이 수다원에서 아라한까지 네 가지 도과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며, (, 산냐/삼즈냐)의 타파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상좌부와 맥을 같이하는 부분이 여럿 있습니다.

다만 산냐의 정의에 대해 약간의 차이가 있다. 상좌부에서는 관찰에 뒤따라 생기는, 대상에 대한 인식 작용 + 나중에 대상을 인식하기 위해 마음에 인상을 각인하는 작용에 가까운 뜻으로 산냐를 정의하는 반면, 대승에서는 '범주화  개념화 작용'에 초점을 두고 삼즈냐를 풀이합니다.
 언어학적인 측면이 상좌부의 산냐보다 조금 더 강합니다.
상좌부에서는 담마(실상)에 대한 관찰이 미세하지 못하면, 마치 판단력이 미성숙한 아이처럼 산냐가 그릇되게 발휘되므로, 담마를 투철하게 관찰해서 그릇된 산냐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을 주문한합니다.
반면 대승은 설일체유부 및 힌두 외도들과의 논쟁을 통해 자성(svabhava) 개념을 타파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삼즈냐를 '언어를 통한 일상적/철학적 개념화'에 가까운 의미로 자주 논하며 이를 소멸할 것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또한 상좌부 불교에서는 금강경의 '무주상 보시'에 대해서도 의견을 약간 달리합니다.
보시하는 '자아'가 있다는 관념이 그릇된 것임은 상좌부에서도 인정하며, 《탐욕 있음 경》(Atthiragasutta, SN 12.64)에서도 금강경 제4분과 매우 유사한 서술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상좌부에서는 보시로 인한 과보에 대해서는 올바로 알고서 보시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이는 동아시아에서의 '무주상 보시'에 대한 흔한 설명인 "보시했다는 생각 없이 보시하라"와는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사실 산스크리트본 금강경에서도 무주상 보시는 삼즈냐에 얽매인 채 보시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맥락으로 쓰여있을 뿐, "보시했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식으로 한정해서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대승은 보시의 과보를 기대하는 마음에 대해서도 '(rupa)'에 대한 집착의 일종으로 보기 때문에, 보시의 과보에 대해서도 기대하거나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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